2012/08/31 16:48

<응답하라 1997>을 보며 인피니트를 떠올리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슬펐다. 고작 15년 밖에 지나지 않은 1997년을 회상하는 시대극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 드라마를 누가 보겠냐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정확히 보름 뒤, “본방사수!”를 외치며 칼같이 귀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요즘 언니와 내가 열심히 보고 있는 <응답하라 1997> 이야기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시대극으로 제작된다는 것에 세월의 무색함을 느꼈지만, 결국 그 시절의 아련함을 떠올리며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실 난 <1997>에 등장하는 H.O.T.(마지막까지 점을 찍어야한다)세대는 아니다. 오히려 나와 친구들은 god와 신화에 열광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주인공 성시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오빠들이 더 멋있다!”며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아빠가 벽에 붙은 ‘호영오빠’의 브로마이드를 찢었을 때 그 슬픔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떼면 되지! 왜 찢어 버리냐고!! 다 찢어진 얼굴을 어떻게 쓰레기통에 버리냐고!!!”소리치던 내 모습은 성시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시절, 내 삶의 8할은 god였다.

대학 입학 이후, 어느 교수님은 “비틀즈는 들어 보았냐”고 물었다. 그 강의실 안에서 ‘Let it be’를 제외한 비틀즈 음악을 아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교수님은 도대체 너희들은 무슨 음악을 듣고 자랐냐며 타박을 했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10대 때 god의 어머님께를 랩까지 달달 외워서 부를 수 있었다. 또 신화의 first love를 들으며 김동완의 첫사랑이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까짓 거 듣는다. 들어”라고 궁시렁거리며 비틀즈의 노래를 어울리지 않는 MP3에 눌러 담았다.

드라마 속 성시원이 나이를 먹어가듯 나 역시 나이를 먹었고, ‘팬심’ 역시 슬슬 자취를 감췄다.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오빠들을 보며 “아이고, 저 오빠들도 얼른 결혼해야할 텐데..”라고 넋두리를 놓는 것이 팬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요즘에는 자발적으로 선곡한 폴 매카트니의 ‘Hey, Jude’를 들으며 감동받고 있다. 그리고 슈퍼주니어 13명의 이름을 줄줄이 말하는 사촌동생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또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인피니트와 틴탑의 노래를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음악’을 안다고 우쭐대며 ‘요즘 노래’를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시작하는 <응답하라 1997>을 무시했던 것 역시 ‘요즘 드라마’를 경시했던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개박수를 치며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를 돌아보니 인피니트와 틴탑 역시 ‘요즘 음악’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과, 비틀즈를 몰랐던 나의 10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H.O.T.와 god였다. god를 모르는 사촌동생을 타박할 것이 아니다. 인피니트와 틴탑이 그의 10대에 가장 큰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덧글

  • 2012/08/31 22: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