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5 02:04

사실과 진실을 가름하는 것은 무엇인가-<사이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남녀의 운명은 3초 안에 결정된다.” 남녀의 관계는 ‘이미지’로 좌우된다는 말이다. 어디 남녀관계뿐이랴. 대개 사람간의 관계는 이미지가 결정한다. 깔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신뢰를 얻는다. 반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의 말은 그렇지 못하다.

<사이비>는 이미지와 신뢰의 관계를 설명한다. 멀끔한 장로와 목사는 수몰위기에 놓인 마을 주민들의 환심을 산다. 안수기도를 하고, 샘물을 팔며 사기행각을 벌인다. 하지만 주민들은 모른다. 사기수배자인 장로를 찾는 경찰의 질문에도 장로를 보호한다. 반면 지저분한 인상을 가진 영선이 아버지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은 사실을 믿은 것일까. 이미지를 믿은 것일까.

인간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언제나 갈등한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었던 주관적 진실들을 객관적 사실인양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는 그 결정의 근거가 됐다. 노름판에 발을 들이는 영선의 아버지보다, 좋은 차를 끌고 다니는 목사의 말이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테다. 사람들이 믿은 것은 이미지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 이미지에 근거한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감독은 이미지로 인한 선택의 갈등을 표현하기 위해 종교를 선택했다. 종교는 도구일 뿐이다. 일상에서도 영화와 같은 일은 많이 일어난다. 지금껏 내가 믿은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지에 속고 있으면서 내가 믿고 싶은 진실을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인양 여겼을지도 모른다. 결국 필요한 것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의 시선이다.


2013/10/02 23:07

빈손 너를 기다리는 동안

3월 내 생일 쯤 쓴 글이 마지막 글이었다.
그동안 바쁜것도 아니었는데, 블로그가 텅텅 비었다.
다른건 아니고 취업준비하느라 블로그를 못했다.

6개월 넘게 취업준비를 했는데 돌아와보니 역시 빈손이다.
오늘 가고 싶었던 회사와 가고 싶었던 직무 동시에 떨어졌다.
그리고 용돈 벌이로 하던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됐다.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다.

집에 오니까 엄마가 "더 잘되려고 이러나보다"라고 했다.
보통 이런 말 들으면 힘이 나야되는데 자존감이 바닥을 찍어서 그런지 할 말이 없었다.

"엄마 나 위로하는게 아니고 진짜 잘될거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분명 엄마도 속상할거다.
내 앞이라고 티를 못 내고 있을 거다.
더 기다려보라고, 세상에 쉽게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준 엄마가 너무 고맙다.


2013/03/05 17:24

취업준비생의 생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차라리 재수생의 생일이 더 좋았다. 재수를 시작한 스무살엔 대학이라는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보냈으니까. 하지만 스물 다섯의 생일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취업준비생의 생일은 우울하고, 우울하고 또 우울했다.

엄마가 끓여놓은 미역국을 냄새로만 마시고 집을 나섰다. 스터디 중간 다 식은 핫도그를 입에 넣은게 생일날 첫 끼니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죽어라 커피를 만들다 내 시급으로는 그린티 프라푸치노 한 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세상 우울해지더라. 도대체 뭐 대단하게 살려고 일년에 한 번 있는 '내 날'을 이렇게 흘려보내는지. 이렇게 사는게 맞는지 의문도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다 끝내고 나왔더니 의미없이 보낸 생일이 딱 한시간 남아있었다. 핸드폰에 쌓여있는 생일 축하 문자를 봤다. 그래도 허투루 산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늦게 축하해서 미안하다는 친구들과 뭐 먹고 싶냐는 언니의 문자를 보니 결코 의미없는 생일은 아니었다고 느꼈다.

이렇게 배설과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무뎌지기 위해서다. 생일 역시 수없이 흘러가는 날 중 하루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생일은 이렇게 '별일없이'지나 갈 것이다. 행여나 다음 생일에 직장을 갖게 된다면, 취업준비생의 생일에는 이토록 간절했었다고 기록하여 알려주고 싶다.

올해 내 생일은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 하루 전이었다. 개구리가 깨기 전 몸을 웅크리듯 나도 무딘 생일을 보내고 잠에서 깨어나겠지.

2013/01/18 00:33

god와 길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음반가게 앞에 섰다.

“나는 혜성”
“나는.. 민우! 넌 누구 좋아할 거야?”
“...음, 난 계상! 계상오빠 좋아 할래!”


저마다 좋아할 오빠를 고르는 성스러운 의식에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대세였던 신화가 아닌 god 오빠들을 골랐다. 친구들은 모두 신화의 CD를 샀지만 혼자 god CD를 골라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너무 힘들었다. 신화가 나온 연예가중계를 이야기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들기가 힘들었고 외로웠다. 이렇게 좋아하는 오빠 하나로 외로워진 것은 모두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나 때문이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두 갈래 길에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라고 했고, 김난도 교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은 길로 갈 것을 권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 보다는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god라는 길을 선택한 이후 나는 어땠나. 친구들과 말을 섞기 힘들었고 외톨이가 되었다. 만약 그때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god가 아닌 신화를 선택할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좋아하는 오빠들을 부정할 만큼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권유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지난 몇 년간 청춘에게 던지는 위로와 충고 등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들은 주로 더 힘든 일을 선택할 것을 권했고,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해도 더 힘든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어쩌면 그렇게 충고를 던지는 이들도 모두가 선택하는 양지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그 위치에 올랐을 수도 있다. 또 주어진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도움이 아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항변하고 싶다.

그러므로 유행처럼 던지는 조언과 충고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기를 바란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갈래 길에 선자의 몫이다. 내게 힘든 길이었던 god 오빠들은 그 이듬해 내 마음과 같은 곡을 발표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선택의 길에서 그 끝은 나도, 저명한 교수도 그리고 god 오빠들도 알 수 없다.


2012/12/28 03:27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순수한 민의에 의해 ‘과반 득표 대통령’이 당선 된지도. 분명 혼전 속이었지만 정권교체를 너무도 확실히 믿었던 나머지 ‘당선유력’ 속보를 보고나서는 밥숟가락을 들 힘도 없었다. 75.8%.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우리 가족은 투표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침 8시에 투표를 마쳤다. 또 친구들을 포함하여 더 이상 독려할 사람이 없을 만큼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도 졌다. 그래서 더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MBC’였다. 나는 100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 “MBC 이제 어떡하냐”라고 중얼거리는 내게 엄마는 “네 앞길이나 잘 챙겨”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정말 나보다는 MBC 사람들이 더 걱정되었다. 이제 MBC에서도 쌍차의 모습을, 한진중공업의 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새 다섯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유성기업에서 한진중공업에서 그리고 현대중공업과 외대에서.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아직까지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물론 당선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탕평과 국민통합을 기조로 세운 새 정부의 수장이라면, 그들의 상처를 한 번쯤은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근혜 당선인의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는 못할 것 같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자 보호정책은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명 ‘정몽구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법’이다. 이 법은 사내하도급근로자가 원청업체의 정규직 근로자와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할 때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불법파견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 문제를 개선하는 것 보다는 현행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더 나은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박 당선인은 ‘선 성장, 후 분배’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명박정부 5년 동안 신랄하게 드러났다. “파이를 키우자”는 말은 이제 현실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실효성이 있는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하여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춰가야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지난 5년간 노동자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5년 동안 쌍용차에서만 23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또 MBC를 비롯한 언론사들은 언론을 탄압하는 정부에 맞서 공정보도를 수호하기 위해 수차례 파업에 나섰다. MBC 측은 그간의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명명하며 노조 측에 19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언론사에서 이렇게 많은 금액의 소송을 거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시간동안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역시 사측이 제기한 손배소와 그 금액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MB정부 기간 동안 ‘노동’은 경시되어왔다.

‘노동’이 경시되는 우리 사회는 정말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외면당하는 순간 민주주의 역시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는 노동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문제 해결의 공간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끌어안으며,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 역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접점에 있는 노동이 그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아무런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으로 전락할 것이고, 사회 공동체는 해체와 분열, 갈등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동의 소중함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5년, 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한다. 박근혜로의 정권교체를 51.6%의 국민들이 만들어준 만큼, 현 정부와는 다르게 노동의 소중함을 인정해주었으면 한다. 수많은 연설에서, 그리고 대표 캐치프레이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 대통령’의 면모를 마음껏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지금껏 외면당한 노동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희망한다. 이제 ‘좋은 Follower’의 자세를 가지고 대통령의 정책을 지켜볼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내가 했던 이 모든 걱정들이 기우에 불과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