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순수한 민의에 의해 ‘과반 득표 대통령’이 당선 된지도. 분명 혼전 속이었지만 정권교체를 너무도 확실히 믿었던 나머지 ‘당선유력’ 속보를 보고나서는 밥숟가락을 들 힘도 없었다. 75.8%.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후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우리 가족은 투표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아침 8시에 투표를 마쳤다. 또 친구들을 포함하여 더 이상 독려할 사람이 없을 만큼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한 표’의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도 졌다. 그래서 더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MBC’였다. 나는 100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 “MBC 이제 어떡하냐”라고 중얼거리는 내게 엄마는 “네 앞길이나 잘 챙겨”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정말 나보다는 MBC 사람들이 더 걱정되었다. 이제 MBC에서도 쌍차의 모습을, 한진중공업의 풍경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새 다섯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유성기업에서 한진중공업에서 그리고 현대중공업과 외대에서.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은 아직까지 그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물론 당선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탕평과 국민통합을 기조로 세운 새 정부의 수장이라면, 그들의 상처를 한 번쯤은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박근혜 당선인의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지는 못할 것 같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우는 노동자 보호정책은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일명 ‘정몽구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법’이다. 이 법은 사내하도급근로자가 원청업체의 정규직 근로자와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할 때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효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불법파견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 문제를 개선하는 것 보다는 현행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더 나은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박 당선인은 ‘선 성장, 후 분배’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명박정부 5년 동안 신랄하게 드러났다. “파이를 키우자”는 말은 이제 현실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실효성이 있는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을 통하여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춰가야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지난 5년간 노동자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다. 5년 동안 쌍용차에서만 23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또 MBC를 비롯한 언론사들은 언론을 탄압하는 정부에 맞서 공정보도를 수호하기 위해 수차례 파업에 나섰다. MBC 측은 그간의 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명명하며 노조 측에 19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보상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언론사에서 이렇게 많은 금액의 소송을 거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시간동안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역시 사측이 제기한 손배소와 그 금액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MB정부 기간 동안 ‘노동’은 경시되어왔다.
‘노동’이 경시되는 우리 사회는 정말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외면당하는 순간 민주주의 역시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읽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는 노동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갖는 커다란 제약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문제 해결의 공간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는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끌어안으며,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 역시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접점에 있는 노동이 그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아무런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상실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으로 전락할 것이고, 사회 공동체는 해체와 분열, 갈등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동의 소중함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5년, 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한다. 박근혜로의 정권교체를 51.6%의 국민들이 만들어준 만큼, 현 정부와는 다르게 노동의 소중함을 인정해주었으면 한다. 수많은 연설에서, 그리고 대표 캐치프레이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 대통령’의 면모를 마음껏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지금껏 외면당한 노동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희망한다. 이제 ‘좋은 Follower’의 자세를 가지고 대통령의 정책을 지켜볼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내가 했던 이 모든 걱정들이 기우에 불과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